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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사회의 등불'사회복무요원 장애학생 선생님이 되다
등록날짜 [ 2016년11월08일 13시41분 ]

인천병무지청장 이우종 [연합시민의소리/이우종 인천병무지청장] 대한민국의 젊은 남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병역의무를 이행한다.

19세가 되는 해에 병무청에서 징병검사를 받고 대부분은 현역병으로, 일부는 사회복무요원으로 각각 병역의무를 마치게 된다.
 

우리 사회에는 장애를 가진 아동이나 학생들이 더러 있다. 이들은 남들은 쉽게 할 수 있는 일들도 몸이 불편하다보니 쉽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장애학생들을 전문적으로 돌보는 특수학급이나 특수학교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장애학생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복무요원의 복무분야에 초·중·고 장애학생 활동 지원 분야가 있는데, 이 분야에 배치된 사회복무요원은 특수학급이나 특수학교의 장애학생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필자는 경기도 모 중학교 특수학급의 장애학생 활동지원 분야에서 복무하는 사회복무요원 K씨가 처음 겪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K씨는 스물 셋의 나이에 사회복무요원으로 소집되어 모 중학교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그가 하는 일은 특수학급 소속 장애학생들의 활동 지원..  뜨거운 햇빛이 아직 가시지 않은 9월 초. 훈련소에서 기본교육을 마치고 막 나온 그는 새까만 얼굴과 짧은 머리를 하고 교육청으로 출근을 했다.

교육청에서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마친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도 있고 해서 그는 교육청에서 근무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교육청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게다가 훈련소에서 모범 요원으로 포상을 받은 이력을 본 담당직원이 “특수학급으로 가면 좋겠다.”라고 하면서 그를 모 중학교 장애학생 활동지원 분야에 배치했다. 그는 내심 실망했다. 친구들이나 부모님께 배치결과를 들려주자 모두들 걱정 반 격려 반 한 마디씩 했다.
 

사회에서 들은 말로는 장애학생들이 종종 이유 없이 때린다고 하던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막연한 두려움, 걱정을 뒤로 하고 배치된 중학교로 출근했다. 학교의 담당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면서 간단한 교육을 했으나 그 당시에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십여 분이 지났을까 한두 명 학생들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반가워요”하고 어색한 표정을 하고 다소 눌린 듯이 말하는 모습에 그도 “응! 안녕” 하고 대답하면서도 내심 당황했다고 한다. 그렇게 장애학생들과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설렘과 걱정도 잠시, 그는 ‘2년 동안 이곳에서 복무해야 하는 구나’라고 생각하자 담당 선생님께서 읽어보라고 준 참고서적에는 눈이 가지를 않았다.
 
오후 내내 한숨만 나왔다. 간간히 만나는 학생들과는 그저 형식적인 눈인사만 나눌 뿐...  쉬는 시간에 선생님께서 그에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ㅇㅇㅇ 수업지원 한번 해 볼래요?” 선생님? K씨를 지칭하는 말이다.
 
난생 처음 선생님이란 말을 들었으나 그 의미를 되새겨 볼 겨를도 없이 당혹감과 막연한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장애학생 활동 지원일 뿐인데...... 수업을 하라니......?” 그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 장애학생 옆에 앉았다.

그 학생은 지적1급의 장애가 있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갑자기 책상을 쾅! 쾅! 내리쳤다. 당황한 그는 옆에 있던 선생님께 “어떻게 해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그 아이의 상황을 이해하고 인내를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전에 그가 겪어본 적이 없는 낯선 상황이다. 그가 원한 것도 아니고 국가의 부름에 의한, 타의에 의해 겪게 되는 상황에 그는 몹시 당황했다.
 

이렇게 그의 장애학생 활동 지원은 어색, 당혹, 고민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동안 담당 선생님은 어색해 하는 그에게 옆에서 조언도 하고 상황에 따른 대처요령 등을 알려주며 그가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도 나름대로 적응해 갔다고 한다.

그리고 10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 과연 내가 이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고민했던 그에게 어느덧 10개월이란 시간이 흘렀고, 이제 그는 장애학생들의 친구이자 선생님이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지금도 K씨를 비롯한 많은 사회복무요원이 사회 각 분야에서 열심히 복무하고 있다. 그들 모두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당혹해 하고 힘들어 하면서도 나름대로 적응해 가고 있다.

우리는 사회복무요원을 「사회의 등불」이라고 부른다. 사회복무요원이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공익실현을 위해 묵묵히 복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한 것은 아니지만 스물 셋의 나이에 선생님이 된 K씨!
 

아무쪼록 필자는 K씨가 장애학생 활동지원 분야에서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며, 복무를 마치고 건강한 청년으로 사회에 복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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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찬 (world6969@hanmail.net)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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