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불화 3점, 문화재청 산하 재단과 원래 봉안됐던 사찰의 노력으로 국내에 환수

입력 2015년06월04일 19시28분 정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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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도(七星圖)’ 3점(비단에 채색, 84×55㎝)'

[연합시민의소리] 4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6·25전쟁 등 한국사회의 혼란기인 1950~60년대 초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후기 불화 3점이 문화재청 산하 재단과 원래 봉안됐던 사찰의 노력으로 국내에 환수됐다”고 밝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 이하 재단)과 금정총림 범어사(梵魚寺·주지 수불 스님)는 지난3일 오전 11시(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진행된 한 옥션에서 1861년(철종 12) 제작된 뒤 부산 범어사 극락암(極樂庵)에 봉안됐다가 사라진 ‘칠성도(七星圖)’ 3점(비단에 채색, 84×55㎝)을 7만8500스위스프랑(한화 9400여만 원·경매수수료 포함)에 낙찰받았다.


재단은 앞서 해외 경매시장에 출품된 한국문화재를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스위스 취리히 소재 콜러 옥션(Koller Auktionen)에 출품된 ‘칠성도’를 발견하고 전문가에게 의뢰해 불화의 진위와 가치를 평가했다.


특히 ‘칠성도’ 하단에 적힌 그림의 조성경위를 적은 화기(畵記)를 통해 이 불화 3점이 1861년 밀양 표충사(表忠祠)에서 제작된 뒤 범어사 극락암으로 옮겨 봉안된 ‘칠성도’ 11점 가운데 3점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칠성도’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 소장 ‘칠성도’ 2점도 범어사 극락암에 함께 봉안되었던 11점의 일부임이 확인됐다.

불화 제작을 주도한 선종(善宗)은 19세기 중·후반 경남과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畵僧)이다.


불교문화재 전문가인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칠성도’는 조성연대와 제작처, 화승, 봉안처 등 조성유래를 확실히 알 수 있고, 짜임새 있는 구도와 단아하면서 건장한 불상의 형태, ‘칠성도’의 중심인 ‘치성광삼존도’가 남아있는 점 등으로 볼 때 19세기 후반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재단을 통해 불화의 존재를 알게 된 범어사는 ‘성보(聖寶)문화재’ 망실에 대한 참회의 의미로 금액에 상관없이 구입할 의사를 밝히고 재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재단은 환수의 전체 과정을 주관, 범어사와 함께 국외로 유출된 불교문화재를 제자리(원래 소장처)로 되돌려놓는 문화재 환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게 됐다.


경매를 앞두고 스위스 현지에서 ‘칠성도’ 3점을 조사한 불교회화 전문가인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은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11점 구성의 칠성도로 국내 입수 후 범어사로 봉안 시, 본래의 종교적 기능 또한 회복할 수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한편 ‘칠성도’ 11점이 봉안됐던 극락암은 1960년대 후반에 훼손돼 철거됐다.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은 “이번 환수를 계기로 앞으로 ‘성보보존’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환수된 ‘칠성도’는 본래 봉안처인 극락암을 재조성해 안치하고, 나머지 ‘칠성도’도 되찾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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