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인천 앞바다의 사이다

입력 2017년03월22일 09시49분 임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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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민의소리]우리나라에서 사이다 역사는 인천에서 시작된다.

전국을 통틀어 그 제조 시설이나 규모면에서 따라올 곳이 없었다. 1905년 2월 일본인 히라야마 마츠타로(平山松太郞)가 인천탄산수제조소를 신흥동 해광사 인근에서 창업하며 사이다를 생산했다.

그 뒤 1910년 5월 나카야마 우노키치(中山宇之吉)가 같은 동네에 ‘라무네제조소’를 창업했다.

인천탄산수제조소는 ‘별표(星印) 사이다’와 ‘라무네’ 라무네제조소는 ‘라이온’과 ‘헬스표’라는 상표로 사이다를 판매했다.
 

사이다는 원래 유럽에서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알코올성 음료를 말한다.

우리나라에 1853년 영국 해군에 의해 처음 전래 되었을 때는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6도의 사과술이었다. 오늘날의 톡톡 쏘는 시원한 탄산사이다와는 거리가 있었다.

1868년에 영국인 노즈 안드레가 일본 요코하마에서 여러 향료를 사용한 ‘삼페인 사이다’라는 이름의 제품을 개발했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오늘날 ‘사이다’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이다는 이산화탄소를 포함하고 있어서 톡 쏘는 맛이 상쾌하고 산뜻하여 인기 절정이었다.

당시 경인철도 차량에도 ‘대형사이다 광고판’이 붙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당시의 사정을 신태범(愼兌範)은 '개항 후의 인천 풍경'에서 “일본인이 라무네라는 싸구려 음료수를 만드는 공장을 세워 빙수밖에 없던 여름철에 시원한 마실거리를 선보였다. 병은 그대로 내놓고 3전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광복 후에는 ‘인천탄산’의 후신인 ‘경인합동음료(주)’를 불하 받은 손욱래(孫旭來)가 ‘스타 사이다’를 만들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무렵 전국 12개 업체 중 인천의 ‘스타사이다’와 평양의 ‘금강사이다’는 단연 독보적 존재였다.

그러나 1950년 5월 9일 서울서 ‘칠성사이다’가 출시되는 바람에 판도가 바뀌긴 했지만, 인천에서 만들어진 ‘스타사이다’는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가 없으면 못마십니다~”라는 만담 노래가 나올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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