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의 도시, 인천 특별전 포스터
[연합시민의소리]4일 인천시립박물관은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에 있어서 해양의 역사가 처음 전개된 도시 인천의 해양사(海洋史)를 재조명하기 위하여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관련 유물을 대여․전시하는 “해양의 도시 인천”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인천은 해양의 도시이다. 1883년 인천 개항 이후 우리 민족의 바다 역사 대부분이 인천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배워 온 근․현대사가 증거하고 있다.
‘조선’에서 ‘대한제국’, 나아가 ‘대한민국’으로 발전해 나가면서 주권국가로서의 행정체제를 갖추기 시작한 것도 인천이었다. 동서양의 다양한 국가들과 통상수호조약을 체결하여 조선이 주권국가임을 대외에 알리고 인정받은 것이 바로 인천이다.
우리 영토의 경역을 넘어 오가는 물품에 관세를 부여하는 ‘해관(海關)’이 처음 설치된 곳이 인천이요, 물품을 실은 배들의 안전을 위해 바다에 빛을 비춘 등대(燈臺)의 역사도 인천에서 시작되었다. 그 선박들을 인천항으로 인도하였던 도선사의 시초 또한 인천사람 유항렬(劉恒烈)이었다.
해양의 주권을 우리 힘으로 지켜내고자 강화도에 ‘조선수사해방학당(朝鮮水師海防學堂)’을 설치하여 최초로 해군 생도를 양성하였다. 아울러 열강에 맞서 바다를 지키겠다는 큰 뜻을 품고 고종황제가 군함 ‘양무호(揚武號)’를 도입한 곳도 인천이며, 그를 이끈 국내 최초의 함장 역시 인천사람 신순성(愼順晟)이었다.
바다를 자원으로 활용하는 해양 산업이 시작된 곳도 인천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 산지인 주안염전(朱安鹽田)의 개설, 수출입 물품을 다루었던 국내외 무역상사의 각축장,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았던 임해유원지 월미도와 조탕은 물론 국내 최초의 수족관의 개장과 해수욕장 등 해양관광의 태동 등은 모두 인천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안전한 선박의 입출항을 위한 시설도 인천에서 시작되어 향상되었다. 선박의 항행을 위한 기상관측이 응봉산에서 시작되었으며, 최초의 해양 무선통신은 그 자체도 최초인 세관감시선 ‘광제호(廣濟號)와 연락을 주고받은 월미도에서 시작되었다.
아시아 최초로 인천항 갑문(Dock)가 설치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100만 평에 이르는 내항으로 발전시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토대를 이루었다. 규격화된 수출입을 위한 컨테이너부두가 1974년 인천에서 최초로 설치되었다. 다양한 해양산업에 종사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국립해양대학교‘가 인천에서 문을 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상의 사실들은 인천이 ‘해양의 핵심적 도시’임을 말해 주고도 남는다. 먼 옛날부터 ‘인천만(仁川灣)은 인천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지역 정체성의 모태였다. 오늘날에도 지역 경제의 33% 가량을 바다에서 일궈나가고 있다.
바다를 기반으로 역사를 써내려온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산업화와 도시화로 점철된 현대사 속에서 인천은 회색의 공업도시로 소개되어 왔다.
그 사이 인천이 품어왔던 해양역사 또한 잘못된 의도와 지식으로 타시도에 빼앗기기도 하였다. 최근 인천에서는 해양주권 찾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 결정된 해양경찰청의 부활이며, 현재 예타가 진행 중인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의 건립 등은 단결된 시민의 힘이 만들어 낸 성과의 출발이다.
여론의 중심에 있는 인천 해양사의 주권적 해석과 시민들의 이해를 제고하기 위하여 시립박물관은 “해양의 도시, 인천” 특별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시립박물관 관계자는 “금번 특별전이 시민들에게 인천의 해양 역사를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후손들에게 건강하고, 활기차고, 아름다운 해양 문화를 남겨 주는 역사적인 일에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며 “금번 전시를 위하여 해양의 역사를 연구하며 또 인천의 해양 주권을 위해 노력하는 화도진도서관, 서울본부세관, 인천지방해양수산청, 중앙도서관, 국립해양박물관, 국립등대박물관, 국립해양대학교박물관, 인천항을 사랑하는 800모임, 인천본부세관의 김성수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