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NYT) '인민군 총공격 제보자' 홍윤희, 60년만에 반역자 오명 벗어

입력 2014년01월05일 14시53분 홍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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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바로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을 살려낸 유일한 구조자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뉴욕타임즈 캡쳐
[여성종합뉴스/홍성찬기자] 미국의 일간지 뉴욕타임즈(NYT)가 4일(현지시간) 한국전쟁 초기 북한 인민군의 총공격 계획을 국군에 제보한 홍윤희씨가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의 재심을 통해 60년 만에 반역자 오명을 벗는 무죄를 선고받았다며  재미교포 홍윤희 씨(84)의 사연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때 반역자로 몰렸던 사람이 이제라도 영웅의 지위를 얻고 싶어 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홍 씨가 간첩으로 몰렸다가 60여년 만에 재심으로 무죄 선고받은 과정을 소개했다.

전쟁 발발 당시 20세였던 홍 씨는 보병학교 입교를 앞두고 대기하던 중 낙오하며 인공 치하에서 목숨을 구하고자 인민의용군에 입대했다가 '인민군 9월 총공격 지시'라는 정보를 접하고 1950년 9월1일 탈출해 국군에 귀순했다.

홍 씨는 이 정보를 유엔군사령부에 장시간 브리핑까지 했으나 그해 9월11일 부산에서 느닷없이 간첩 혐의로 헌병에 연행,온갖 고문 끝에 기소돼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두 차례 감형으로 1955년까지 복역하다 출소했다. 재심 방법을 찾았으나 허사였다.

홍씨는 1973년 사회안전법 제정 소식에 새 삶을 찾고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미국에 정착한 홍씨는 1989년 일본 사학자 고지마의 '조선전쟁'에서 인민군 소좌 김성준이 투항해 인민군 총공격을 제보했다는 대목을 발견했다.

자신 외에도 제보자가 있다는 생각에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홍 씨는 미국의 로이 애플먼 전사, 일본 고지마 전사, 미 국립문서보관소와 부산 용호동 문서보관소 등의 방대한 자료를 뒤졌다.

홍 씨는 포로심문보고서 등에서 공식 전사와는 달리 김성준이 제보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찾아냈다.

이어 2011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전쟁사 자료인 '로이 애플먼 컬렉션'을 살펴보다가 1950년 당시 자신이 9월 총공격 계획을 제보했고 미군이 이를 중요 정보로 취급했다는 정황이 담긴 메모를 발견했다.

국사편찬위가 미 국립문서보관소를 통해 입수한 메모였다.

내용은 '간부후보생 홍이 인민의용군에서 탈출해 1950년 9월1일 새벽 가산 인근에 주둔한 아군에 귀순, 인민군이 열흘 안에 부산을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총공격을 감행할 계획임을 알렸다'는 것이었다.

이 메모는 이후 홍 씨가 재심을 청구하는데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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