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종합뉴스/ 홍성찬기자] 8일 생명과학 분야 학술지인 셀 온라인판 게재된 국내 연구진이 24시간 단위로 기복을 보이는 우울, 불안 등의 정서상태를 조절하는 핵심 작용 원리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장기간 투여해야 하고 내성 발생도 빈번한 기존의 우울증, 조울증, 불안장애 치료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치료제 개발이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김경진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및 생명과학부 교수, 정수영 박사, 손기훈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연구팀은 미래창조과학부의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및 21세기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인간의 정서상태 리듬을 조절하는 작용원리를 연구했다.
생명체에서 생화학적, 생리학적 또는 행동학적 흐름이 거의 24시간 주기로 나타나는 현상을 '일주기 리듬'이라 한다.
수면-각성 주기, 호르몬 분비, 체온조절 등 다양한 생리, 대사, 행동이 일주기 리듬으로 나타나며 우울, 불안, 공포, 공격성, 중독 등 인간의 정서상태 또한 하루 단위로 상당한 기복을 보인다.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우울증, 조울증, 불안장애, 계절성 기분장애 등 다양한 형태의 정서장애, 중독질환은 이 일주기 리듬에 이상이 오면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많은 연구진이 일주기 리듬의 작용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 연구에 나섰지만 핵심 원리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었다.
연구팀은 뇌 도파민(정서, 운동, 인지, 보상, 동기부여 등 뇌기능을 관장하는 중요 신경전달 물질) 신경회로가 정서조절 및 정서장애를 일으키는 핵심 조절 시스템이란 사실에 착안해 세계 최초로 일주기 리듬의 비밀을 풀었다.
REV-ERBα유전자는 분자 생체시계에서 표적 유전자들의 발현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연구팀은 REV-ERBα유전자의 특정 변이형이 조울증이나 재발성 우울증의 발병 및 치료와 상관관계가 높다는 유전학적 연구 결과들에 주목했다.
REV-ERBα 유전자가 제거된 돌연변이 생쥐를 대상으로 조울증, 우울증, 강박불안증, 공격성 및 공포와 관련된 동물행동 검사를 수행한 결과 REV-ERBα 돌연변이 생쥐에서 우울불안도가 정상 생쥐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낮은 동시에 과도한 활동성과 공격성이 나타나는 등 인간의 조울증과 비슷한 표현형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REV-ERBα 돌연변이 생쥐가 보인 신경행동학적 이상은 도파민 작용을 억제할 경우 정상 수준으로 회복됐다. 연구팀은 뇌 도파민 신경전달을 측정, REV-ERBα 돌연변이 생쥐에서 나타난 비정상적인 도파민 과합성, 도파민 신경세포의 과활성화 현상을 밝혀냄으로써 이상 행동이 도파민 신경회로의 과활성화에서 비롯됨을 입증했다.
일반적으로 하루 중 활동기인 낮에는 도파민 합성이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 휴식기(수면기)에 비해 우울·불안도는 감소하고 반대로 활동성, 공격성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연구팀은 이러한 일주기적 조절 양상의 분자·생물학적 작용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 마이크로어레이 분석법을 이용한 유전자 탐색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도파민 합성의 핵심 조절인자로서 속도결정 인자로 평가받는 티로신수산화효소(TH)의 유전자 발현이 도파민 합성과 똑같은 양상의 일주기 리듬을 보인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어 TH 유전자의 발현을 측정하는 리포터 유전자를 만들어 이를 이용한 후속 연구를 벌인 결과 REV-ERBα가 도파민 신경세포의 상위 전사인자인 NURR1과 경쟁적으로 작용해 TH 유전자의 발현을 하루 단위로 조절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또 만약 두 전사인자 사이의 일주기 리듬이 깨질 경우 중뇌 도파민 신경전달에 이상이 발생하고, 행동학적 이상이 발생함을 알아냈다.
이번 연구결과는 장기간 투여, 빈번한 내성 발생 등의 한계를 보인 기존의 정서·중독장애 치료제들을 대체하는 신개념 치료제 개발 연구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도파민 의존성 신경질환인 파킨슨병, 하지불안증의 치료제 개발에서도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