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최고 100선’을 통한 인천 가치 재창조

입력 2016년05월10일 10시36분 임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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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도서관 외규장각

2003년 복원된 외규장각
[연합시민의 소리] 외규장각(外奎章閣)은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에 설치한 규장각의 분관이다. 정조는 외규장각 설치 이후 규장각을 내규장각(內奎章閣, 내각)이라 하고, 봉안품의 성격을 구분하여 내규장각과 외규장각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강화 행궁에 외규장각을 설치한 이유는 한양에서 가까우면서도 국내의 변란과 외적의 침입이 발생했을 때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외규장각에는 왕실 물품, 어제(御製:왕이 지은 글)·어필(御筆:왕의 친필), 기타 족자류, 의궤(儀軌), 의궤 외 서적 등 총 5,166점이 봉안되어 있었다. 특히, 외규장각에 봉안된 의궤의 경우 임금이 보는, 이른바 어람용(御覽用) 의궤로 다른 의궤에 비하여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이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가 강화에 침략하여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의궤 300여 책을 포함한 도서 360여 책을 약탈하였는데, 프랑스에 반출된 대부분의 의궤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보관하고 있었다.


강화부궁전도(1881)에 보이는 외규장각
1975년 재불학자 박병선 박사에 의해 외규장각 의궤의 소재와 목록이 국내에 알려지게 되면서, 1991년부터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요청, 2010년 G20정상회의에서 양국의 대통령이 만나 외규장각 도서를 임대형식으로 대여하고 5년마다 임대를 갱신하는 데 합의했다. 그리고 2011년 병인양요가 발발한 지 145년 만에 마침내 297책의 의궤가 우리나라로 귀환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외규장각 건물은 2003년 강화군이 복원한 것으로, 내부에 외규장각의 설치 과정과 의궤의 반환 과정 등의 내용을 다루는 전시실이 조성되어 있다.


시 관계자는 “세계적인 기록문화 유산으로 평가받는 외규장각 의궤를 보관했던 인천이 앞으로도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에 더 큰 역할을 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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